# 사고시점
한동안 사고가 정지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단단하게 쌓아가던 성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는 직관적인 사실 위주의 글을 좋아한다. 글을 읽고 난 후에는 지식으로 전환가능한 주제들을 선호한다. 자기계발서는 그에 적임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 미국의 실리콘 밸리의 성공한 사람들부터 간결하게 요약하여 제시하는 일본 작가들의 자기계발서까지 게임 속 아이템처럼 먹어 치우기를 반복했다. 온갖 아이템으로 무장한 나는 취업시장 속 눈에 띄는 지원자가 목표이었다. 그때 피로사회 를 만났고, 바로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다.
# 피로사회
고전은 수 해가 바뀌어도 그 메시지가 녹슬지 않는다. 이 책이 나온지도 10년이 넘었다.(비록 나는 엊그제 만나 사고가 발생했지만) 작가는 지금 우리 사회를 피로사회 로 명명하며 이는 자기 착취의 사회로 해석한다. 피로사회 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사회는 다양성을 배제하고 긍정성의 폭력으로 하여금 저항의 에너지를 순순히 포기하게 만든다. 성과시대의 주체로 사는 우리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기는 꼴이 바로 그러하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결국, 자기 착취로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더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 사고 현장
나의 경우, 취업시장에 매력적인 상품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자격증을 따고, 지원할 기업에 대한 애정어린 공부를 했다. 열심히 일하기 위해선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에 운동습관을 유지했다. 그리고 건강한 마음을 위한 명상도 꾸준히 하였다. 하루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매주 계획을 세웠다. 새롭게 시작한 습관과 유지해가고 있는 습관을 표로 추적하며 취업 시장 속 대어를 꿈꾸며 나아갔다. 젊으니깐 좋아하는 회사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열정을 갈아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울 때, 나는 그저 또 한명의 똑같은 지원자가 되어있었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다 이유로 생각없이 자격증을 땄으며,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주어진 첫 자유 시간에 죄책감을 느꼈다.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같은 속도로 맞추고 싶어서. 내 스스로에 의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또한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 탈출구로 나가는 법
책 초반에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질병들로 자기착취 사회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전달하여 나와는 거리가 멀다 착각했다. 긍정이라는 단어는 적대성을 전제하지 않기에 문제로 보지않았다. 긍정의 과잉이 동질성의 극단으로 이어지고 이질성을 배제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과정의 전개만 어색할 뿐이다. 현실은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작가는 이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깊은 심심함을 제시한다. 깊은 사색에 잠겨 눈의 부산한 움직임을 중단하고 집중상태를 만든다. 이러한 훈련은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중단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남들 다한다는 이유로 그게 마치 스스로를 위해 왠만큼 생각해봤다고 치부하지 않는가? 좀 더 무게점을 의식적으로 나에게 두자. 스스로 도구화하려는 시도를 줄이자. 나의 경우, 게임 속 캐릭터 마냥 아이템 없는 것보다는 많은게 좋다며 쌓아둔 자기계발서들을 조금 미뤄두었다. 깊은 심심함에 취할 수 있는, 읽다가도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들을 가까이 하고 있다.
혹시 당신도 나의 생각에 공감한다면, 비판적 사고가 부재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멈추고 피로사회 를 탈출하라!